책을 소개 할까요?

아이를 키움으로써 다시 만난 세상, 그 시간에 대하여


'비혼' '비출산'을 다짐했던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는데, 정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주고 즐거움을 알려줬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이 사회가 요구하는 육아와 살림이라는 과제가 여자를 짓눌렀다. 엄마, 며느리, 아내, 직장인 역할까지 하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고, 누구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여자는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라는 인간이 다시 보였고, 나를 둘러싼 '사회'의 문제가 뚜렷하게 보였다. 


이 책은 현재 30대를 살고 있는 '보통 엄마'의 흔한 일상을 그린 에세이다. 그런 동시에 결혼으로 '여자의 현실'에 직면한 30대 기혼 여성의 인생 현장 보고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는 왜 아이를 낳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해 1부 엄마(모성신화), 2부 나(성장과정, 가정환경), 3부 아이(양육 태도, 육아 고충), 4부 고양이(육아와 육묘), 5부 남자(성역할, 가부장제), 6부 세상(맘충, 노키즈존, 약자 배려)으로 질문과 고민을 확장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공감과 위로의 언어', '해소와 자유의 언어'가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는 위로를 얻게 될 것이다. 2016-2017년 [세계일보]연재 당시 여성가족부 양성평등미디어상을 받았다.

 

출판사 서평

수시로 치밀어 오르는 감정, 낯설어진 세상, 여자의 현실을 
설명하는 '엄마의 언어
'

여자가 엄마가 되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일까? 인간의 위대함, 생명의 숭고함, 아기를 향한 본능적인 모성? 초보맘들의 커뮤니티와 각종 SNS에는 이런 육아 후기가 올라온다. 


"아이를 낳으니 세상이 달라졌어요." 


처음 엄마가 된 현미 씨 눈앞에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 주고 즐거움을 선사했다. '아이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 "아아 좋아"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돌봐줘야 하고, 사랑하고, 일평생 지근거리에 두고 지낼 존재를 만나면서 내면의 즐거움이 커졌다. 


그러나 반대편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어느 날부터 현미 씨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늘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이와 함께 있다가 잠깐 졸을 때,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서 책 한 권조차 읽어주지 못할 때면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명절날 시댁 부엌에서 놓여나지 못할 때, "남편한테 아침밥은 차려줘?"라고 사람들이 물을 때, 맞벌이를 해도 남녀 책임의 무게를 다른 것으로 간주할 때… 울컥거리는 마음이 입가를 맴돌았다.


어느 날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울 리 없는데, 이토록 소중한 가족과 함께라면 일상이 좀 더 기껍고 행복해야 할 텐데… 현미 씨는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기 시작한다. 

답답함이 풀린 건 '모성 이데올로기'에 대해 알아 가면서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이 사회가 요구하는 모성 신화가 내면에 가득함을 깨달았다. 세 살까지 엄마가 아이 옆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3세 신화'부터 아이의 발달을 전부 엄마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 분위기에 나 역시 젖어 있었다.(/ pp.10쪽)

그는 바깥일은 남자, 집안일과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연애를 5년이나 했지만 그가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을 미처 알지 못했다. "연애할 때 당신의 그런 가부장적인 면을 미리 알려 주지 그랬어?" 내 앞에 거대한 벽이 놓인 느낌이었다. 남편의 무의식에는 '능력 있는 아빠, 내조하는 엄마'의 그림이 있었다.
(/ pp.286~287)

이 책이 이야기하는 건 현재 30대로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삶이다. 1980년대에 태어나 희미한 가부장제의 틈에서 사회적?경제적 성취를 위해 달려오다 결혼으로 '여자의 현실'을 알아버린 30대 기혼 여성의 흔한 일상. 하지만 그 일상 속에서 엄마들이 겪는 문제들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곳에서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사회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으로 보이는 저자의 경험과 고민은 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도약이기도 하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가 되는 걸 두려워했던 딸, 진짜 '어른'이 되다


현미 씨가 느꼈던 '죄책감'의 근원에는 모성 신화뿐 아니라 '애가 나처럼 상처받고 자라면 어쩌나'라는 불안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서른 살 전까지만 해도 저자에게 출산은 '영혼이 뒤바뀌어야 가능한' 삶의 선택이었고, 아이는 언젠가 멸망할 지구에 후손을 남겨 고통을 겪게 하는 것이었다. 저자가 비혼과 비출산을 다짐했던 배경에는 성장과정이 있었다.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를 때마다 엄마는 '너만 없었어도…'라는 혼잣말을 했다. 아버지가 또다시 집 안을 뒤엎은 날, 동네 여인숙 방바닥에 누워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는 왜 태어나서 엄마가 떠날 수 없게 발목을 잡고 있을까? 어른들은 왜 결혼을 해서 이토록 힘들게 사는 걸까? 이런 의문을 지닌 아이가 결혼과 출산에 비관적인 생각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의 태도는 타고난 성질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며 고통스러워한 시간의 결과물임을 성인이 되고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 p.22)

부모님의 관계가 안정되고 불쌍한 엄마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게 된 뒤에야 저자는 연애를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독립한 뒤에는 성인이 된 자신을, 결혼을, 출산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며 '어른'이 됐다고 믿었는데, 어느 날 머릿속에 의문점 하나가 떠올라 가슴을 가득 채웠다. '우리 부모님은 나한테 왜 그랬을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떤 형태로든 나타나 자녀 양육에 영향을 미친다. 대개 두 가지 형태다. '부모님처럼 하지 말아야지'라며 극심한 강박증으로 자신을 검열해 무리하게 버티는 경우와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똑같이 되풀이하며 자학하는 경우다. 현미 씨는 첫 번째 부류였다. 아이가 유년의 혜택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엄마는 강인해야 한다고, 감정을 아이에게 내색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점점 힘에 부쳤다. 나약함을 혐오하는 자신을 들여다보자 부모님과 화해하지 못한 어린 '내'가 보였다. 아직 겪어야 할 성장통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발톱을 세울 의지가 없는 곰이 됐고, 나약했던 엄마는 슈퍼파워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 됐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모습은 더 이상 없는데 나 혼자 아이를 키우며 예전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없었다면 지난 시간에 대한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을 것이다. 손주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 주려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꼬인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 p.80)

육아는 유년의 상처와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면에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보듬게 되고, 그 상처와 화해하는 용기도 내게 된다. 비슷한 이유로 엄마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너만 그런 것이 아니야'라고, '이런 나도 엄마가 되었다'면서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내 아이도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할까?" "고양이와 아기를 함께 키울 수 있을까?" 
이 시대, 이 땅의 '보통 엄마'들이 하는 육아 고민들


육아휴직 기간 현미 씨의 또 다른 이름은 '털 치우는 노예'였다. 아이와 고양이 두 마리를 함께 키우는 저자에게 사람들은 "고양이가 아이를 할퀴면 어떻게 해?" "동물 털이 애한테 안 좋다던데"라며 우려를 표했고, 시댁과 친정 어른들에게 고양이는 눈엣가시가 됐다. 임신 중 의사에게 일명 '고양이 기생충'이라 불리는 '톡소플라스마' 때문에 아기가 기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공포를 경험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고양이들은 아이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 아이는 고양이들을 보기만 해도 깔깔깔 웃음을 터뜨렸고, 고양이가 등짝을 허락할 때마다 얼굴을 비비댔다. 걷기 시작하면서는 두 고양이와 함께 술래잡기를 했다. 친정 엄마는 아이와 고양이가 노는 모습을 보며 "녀석들 밥값 하네"라며 웃었다. 그럼에도 아기 입술에 털이 끼어 나풀거릴 때, 한여름에 털 청소를 하느라 땀으로 범벅이 될 때, 고양이들이 아기 용품을 긁어대는 통에 외출하기 전 물건을 숨길 때면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 

비오는 날 고양이들과 함께 창밖을 응시할 때면 우리 모두에게 안식처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 우리가 만나기 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쉴 곳을 찾아 빗물 사이를 달렸을 녀석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지금의 모습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그 안도감은 악다구니 쓸 일들이 생길 때면 '내게는 보금자리가 있고 가족이 있는데 왜 이렇게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일까'라는 초연함을 불러온다.
(/ pp.213-214)

10년 뒤면 아이도 중학생이 될 것이다. 영원한 이별을 경험하고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이른 나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경험을 통해 슬픔, 공허함, 아픔, 그리고 마음속에 아련한 강처럼 흐를 그리움이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아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 아이로 성장하는 양분이 되리란 것을.
(/ p.223)

지금은 먹고사는 문제에 바빠 아이는 낳았으니 그냥 키우는 시대가 아니다. 사회가 다각화, 다변화된 만큼 요즘 부모들의 육아 고민 또한 다양해졌다. 현미 씨 또한 아이를 키우며 '자녀도 나와 같은 문화적 취향을 가질 수 있을까?' '아이의 재능과 욕구를 어떻게 포착하고 존중해줄 수 있을까?' '문화자본을 아이에게 물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가 수포자가 되지 않게 하려면?' '아이가 게임에 빠졌을 때, 게임 중독자였던 내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 과정을 통해 육아 방향에 대한 실마리도 얻는다. 아프지 않고 성장하는 아이는 없다. 자신이 바라는 건 아이가 조금도 아프지 않은 삶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모습의 삶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현미 씨는 아이가 겪게 될 상처에 조금 더 담대해지겠다고 마음먹는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란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출산 후 처음으로 부부와 아이만 남은 날이었다. 어른들 도움 없이 남편과 둘이 아이를 봐야 한다는 생각에 현미 씨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서른 중반이나 됐지만 태어난 지 한 달 된 어린 생명은 너무나 조그맣고 연약해서, 책임지는 일이 너무나 두려웠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터미널에 모셔다드린다며 나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나간 지 2시간이 넘어서야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친구를 만났어. 저녁 먹고 들어갈게"라는 남편의 말에 현미 씨의 눈에선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약속을 잡아?" 소리를 질러도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는 가끔씩 '이 남자가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남편에게 물어보면 제대로 대답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이제 막 아빠가 된 남편에게 육아는 TV에서 쌍둥이 아들과 놀러 나간 이휘재 씨의 모습과 같은 것이었다. 울고 보채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머리띠로 앞머리를 과감하게 올려붙인 아빠의 모습은 아니었다. 상상 속에 아이와의 캠핑 나들이는 있어도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고 잠조차 제대로 못 자는 일상은 없었다. 예비 아빠에게 육아란 '이벤트'였던 것이다.
(/ p.257)

결혼 전, 현미 씨와 남편이 살아온 모습은 비슷했다. 둘 다 똑같이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며 지냈고 사회적 성취를 위해 달려왔다. 저자 역시 자신의 욕망을 꾹꾹 억눌러야 하는 이 '성불의 시기'를 미리 짐작하고 연습해 본 적이 없었다.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자 익숙해져서 잘하게 되고 인내심도 강해진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육아휴직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밤을 지새우며 수유를 하고 기저귀를 갈아준 사람이 남편이었다면 아이는 누구를 따랐을까? 우리 집의 육아와 살림은 어떻게 분담되었을까?

남편도 육아휴직을 했다면 우리 집 풍경은 좀 달랐을 것이다. 아이는 내가 엄마라서 무조건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엄마가 누군지 모르던 시절부터 자신을 돌봐 주고 아이의 욕구를 세심히 파악해 들어줬던 얼굴이 나였기에 엄마를 세상에서 최고로 여기는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를 관찰하다 보니 나는 눈빛만 봐도 아이의 상태를 안다. 남편이 아이 옆에 붙어 있었다면 아이가 집착하는 얼굴은 아빠가 되었을 것이다.
(/ p.262)

남편의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된 의문은 남녀 성역할로 그 고민의 범위가 확장된다. 인형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사람들이 "무슨 남자애가 인형이냐?" 하고 말할 때, 남편이 명절 내내 부엌에 서 있던 자신에게 "엄마가 다 하지 너는 별로 하는 일도 없잖아"라고 말할 때 울컥하며 물음표가 떠오른다. 남자에게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것도 여자에게 '여자다움'을 요구하는 것도 폭력이다. 아내에게 '독박 육아'를 요구하면 남편은 '경제적 독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고정된 성역할이 사라진다면 우리나라에 산재한 많은 사회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현미 씨는 분노와 억울함이 앞서 입가에서 맴돌기만 했던 마음을 정의하고 권리들을 차근차근 짚어낸다. 그 사이 자신을 지킬 명쾌한 말들이 쌓여간다.

이 땅에서 
여자로, 엄마로, 약자로 산다는 것


남한테 까칠하고 예민했던 여자도 엄마도 되면 부드러워진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은 종종 한다. "저도 이럴 줄은 몰랐는데, 제가 '오지라퍼(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일컫는 요즘 말)'가 되었네요"라는 고백도 줄을 잇는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엄마들이 사회에 관심이 많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지만, 여자들은 엄마가 된 동시에 사회적 최약자가 되는 경험을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보면 사회의 구석지고 어두운 면이 더 잘 보이는 법이다. 유모차를 끌고 길에 나가는 순간, 휠체어를 타고 이 길을 지나는 게 얼마나 큰 모험인지 알게 되는 것처럼. 현미 씨는 임신부였던 지인의 폭행 경험을 들으면서 이 땅에서 여자로, 엄마로, 약자로 산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한다. 

B는 입덧이 심했다. 지하철에 탈 때마다 특유의 냄새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석 달간 음식을 먹지 못해 입원까지 했고, 퇴원 후에는 오렌지 주스만 먹고 지냈다. (…) 이런 상태로 운전을 하는 것이 더 위험한 데다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반복했다. (…) 그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입덧이 시작되는 시기는 배가 부르지 않아서 겉모습으로 임신 여부를 알 수가 없었다. 가끔씩 눈을 뜨면 앞자리에서 자신을 노엽게 바라보는 어르신들과 눈이 마주쳤다.


"한순간에 알 수 있어요. 맞은편에 앉은 어르신의 생각을요. 보통 어른들과 눈빛이 다르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B는 눈을 감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한 할아버지가 대뜸 B의 무릎을 걷어찬 것이다. 종아리와 허벅지에 연이어 발길질을 해댔다. "젊은 것이, 비켜."
(/ pp.295-296)

'맘충'과 '노키즈존'도 같은 맥락이다. 이 같은 혐오 표현 또한 우리 사회의 '공존의 조건'을 파괴할 뿐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다. 그사이를 중재하고 타협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비로소 제로섬이 아니라 해답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현미 씨는 지하철 노약자석이 비어 있으면, 비워둘 게 아니라 앉기로 했다. 약자에게 먼저 배려하는 사회에는 노약자석이 필요 없지 않은가.
"다시 태어나면 되고 싶은 것은?"라는 질문에 언제나 '무(無)'라고 대답했던 소녀, 불안하고 비관적이어서 세상에 생명을 내어놓는 것에 겁을 냈던 소녀는 이제 사회와 그 안의 문제들을 고민하는 단단한 '어른'이 되었다. '아이를 낳으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이런 것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