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로 수요 폭등해 가격 천정부지, 사기도 주의해야



코로나19로 전 세계 대다수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 시국에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고 있는 산업 분야가 있다. 바로 의료용 장갑, 세정제, 소독제, 일회용 플라스틱 등 방역 용품 분야다. 그중 의료용 니트릴장갑은 ‘대란’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그 수요가 치솟고 있다.

니트릴장갑은 베트남을 비롯해 말레이시아, 태국에서 주로 생산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해도 수요가 한정돼 있었지만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초기만해도 1000장 들이 카튼당 50달러선에서 가격이 형성됐지만 현재는 70달러를 넘었고, 연말에는 80달러까지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말했다.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높아지고 있지만 그래도 사려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으니 생산자가 ‘절대 갑’이 되는 시장이 형성됐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고무장갑의 65%를 생산하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니트릴장갑과 라텍스장갑을 팔아 억만장자가 된 말레이사 기업인이 5명에 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 소재한 세계 최대 장갑 제조업체 ‘톱글로브’의 림위차이 회장의 올해 순자산은 자그마치 25억USD로 늘어났다. 말레이시아의 또 다른 장갑 제조업체인 리버스톤의 웡 틱손 공동창업자 역시 회사 주식이 3월 이후로 6배나 폭등하면서 순자산이 12억달러로 늘어나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블룸버그는 ‘말레이시아의 전통적인 부자들은 오랜시간에 걸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었지만 최근 의료용 고무장갑 산업으로 ’벼락부자‘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에도 니트릴장갑을 생산하는 업체가 다수 있다. 일부 바이어들 사이에서 베트남산 장갑이 말레이시아나 태국산보다 품질이 우수하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세계의 주문량 중 상당수가 베트남으로 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니트릴장갑이 베트남 경제에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니트릴장갑 시장은 2024년까지 전체 고무장갑 시장의 70%에 달하는 7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니트릴장갑 계약 한 건당 수억장으로 거래액만 수백만달러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대형 계약이라면 바이어 측에서 공장 답사를 해야하지만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혀 에이전시 등을 통한 계약대행이 성행한다. 생산업체와 연계된 믿을만한 에이전시를 찾는 일도 그만큼 중요해졌다.  

이런 분위기를 틈타 사기사건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유명업체의 에이전시를 사칭해 계약을 진행하고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계약금만 받고 잠적하는 수법이다. 한국에서 의료용품을 유통하는 A씨는 베트남산 니트릴장갑을 수입을 추진했다. 인터넷을 통해 하노이에 있다는 한국인 브로커와 접촉한 A씨는 총 1억장에 대한 구매계약서까지 썼다. A씨는 계약금 지급을 앞두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베트남에 거주하는 지인을 시켜 브로커가 준 공장주소를 찾아갔더니 미용실이 자리하고 있었다. A씨는 “확인을 안했더라면 자칫 몇 억을 날릴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재 각종 한인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니트릴장갑 관련 사기꾼들의 사진 및 신상명세 등이 올라와 있고 심지어 현상금까지 걸려있는 경우도 있다.  

무역업계 관계자는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공장을 답사한 후 생산업체와 직접 계약을 하고, 가능하다면 선적 후 대금을 결제하는 사후송금방식을 추천한다”고 강조했다.  

 

니트릴장갑 특수 노리는 한국기업들


한국의 화학회사들도 현재의 특수를 놓칠 수 없다. 금호석유화학, LG화학, SK케미칼 등 국내외 화학사들은 늘어나는 수요에 대비, 공장 증설에 나서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올 들어 의료·위생용 니트릴 장갑의 핵심 원료인 ‘NB라텍스(니트릴 부타디엔 라텍스)’의 판매 호조로, 주가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합성고무 소재인 NB라텍스는 얇지만 내구성이 뛰어나 천연라텍스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 시장 점유율은 약 35%로 세계 1위. 생산 규모는 연간 59만톤인데, 올해 안에 6만톤 증설을 계획 중이다.

타이어용 고무를 주력상품으로 내세웠던 금호석유화학은 코로나19 여파로 타이어 수요가 감소하면서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NB라텍스로 손해를 만회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지난 2분기 매출 1조263억원, 영업이익 1201억원으로 기대 이상의 실적을 내는데 성공했다. 3월에 4만원대였던 주가는 최근 10만원을 넘어섰을 정도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대만 등 글로벌 화학회사들이 앞다퉈 NB라텍스 생산에 뛰어들어 공급과잉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병원은 물론, 카페, 식당, 피트니스센터 등에서 니트릴장갑 수요가 높아 당분간은 현재의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의료용 고무장갑 수요는 앞으로 1년 이상 강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LG화학도 말레이시아 화학업체 페트로나스 케미칼 그룹과 손잡고 NB라텍스 합작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니트릴 장갑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말레이시아 남부 펭게랑 석유화학단지에 연간 20만톤 규모의 NB라텍스 제조공장을 짓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023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LG화학은 여수공장에서 NB라텍스 연간 17만톤을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 4월부터 중국 닝보 공장 인근에 NB라텍스 공장 증설 작업을 진행해 내년에는 연간 10만톤의 생산 역량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